[책소개]
조선족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1995년부터 20여 년간 장인정신으로 조선족 문화에 심취해 온 저자 김형관 피디!
그는 조선족 문화 속에 변질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전통과 민속, 민요 등을 “조선족 촌을 찾아서”라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생생하게 재탄생시켰고, 드디어 “서적(책)”이라는 기록물을 내놓음으로써 미래에는 사라질 뻔한 우리의 아리랑의 원형 자료들을 오롯이 담게 되었다!
한민족의 얼을 계승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인“아리랑”! 중국 조선족의 아리랑은 220만 조선족들이 부르는 것이고, 한민족의 뿌리인 동시에 애환, 슬픔, 환희의 아리랑인 것이다. 2002년 조선족 자치주 50주년의 행사 때와 2012년 조선족 자치주 60주년 행사와는 과거의 조선족과 현대, 미래의 조선족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주 1세대의 "아리랑"과 이주 이전의 "아리랑"은 현재의 "창작 아리랑"에서 한민족의 동질성과 민족성이 나타난다. 아리랑은 조선족의 단순한 민요가락이 아니라 한민족의 고향의 노래이고 핏줄에 얽힌 한 맺힌 노래로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는 노래인 것이다.
[목차]
책을 출간하며... / 5
제1장 중국 조선족 민요 "아리랑"
1. '한민족의 문화', '중국 소수민족 문화' / 15
2. 민간 문화예술의 채보정리 사업 / 19
3. 조선족 문화 예술 속의 "아리랑" / 24
4.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들이 생각하는 "아리랑" / 39
5. 아리랑!중국 국가 급 무형문화재이다. / 41
6. 조선족의 문화에서 나타난 "아리랑" / 45
7. 조선족 민요 속에서 "아리랑"은 어디에 있는가? / 50
8. 한민족 민요 "아리랑"의 특징 / 52
제2장 가극으로 꽃 핀 "아리랑"
1. 1938년 중국 무한의 한구 광명극장 / 59
2. "아리랑"이 맺어준 김산과 님 웨일즈 / 64
3-1. 1940년 서안에서 가극 "아리랑" (1) / 75
3-2. 1940년 서안에서 가극 "아리랑" (2) / 80
4. 가극 "아리랑" 무한시(武?市) / 84
5. 조선의용대 김위(金?) / 92
6. 한유한(韓悠韓)의 가극 "아리랑" / 100
7. 전설 극 "아리랑" / 104
8. 연변가무단 가극 "아리랑" / 113
9. 조선족 사회의 "꿈의 아리랑" / 115
제3장 "항일가요"와 "아리랑"
1. 항일가요와 아리랑 / 119
2. 항일무장 투쟁과 1939년 5. 1절 / 126
3. 간삼봉에 울려 퍼진 "아리...책을 출간하며... / 5
제1장 중국 조선족 민요 "아리랑"
1. '한민족의 문화', '중국 소수민족 문화' / 15
2. 민간 문화예술의 채보정리 사업 / 19
3. 조선족 문화 예술 속의 "아리랑" / 24
4.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들이 생각하는 "아리랑" / 39
5. 아리랑!중국 국가 급 무형문화재이다. / 41
6. 조선족의 문화에서 나타난 "아리랑" / 45
7. 조선족 민요 속에서 "아리랑"은 어디에 있는가? / 50
8. 한민족 민요 "아리랑"의 특징 / 52
제2장 가극으로 꽃 핀 "아리랑"
1. 1938년 중국 무한의 한구 광명극장 / 59
2. "아리랑"이 맺어준 김산과 님 웨일즈 / 64
3-1. 1940년 서안에서 가극 "아리랑" (1) / 75
3-2. 1940년 서안에서 가극 "아리랑" (2) / 80
4. 가극 "아리랑" 무한시(武?市) / 84
5. 조선의용대 김위(金?) / 92
6. 한유한(韓悠韓)의 가극 "아리랑" / 100
7. 전설 극 "아리랑" / 104
8. 연변가무단 가극 "아리랑" / 113
9. 조선족 사회의 "꿈의 아리랑" / 115
제3장 "항일가요"와 "아리랑"
1. 항일가요와 아리랑 / 119
2. 항일무장 투쟁과 1939년 5. 1절 / 126
3. 간삼봉에 울려 퍼진 "아리랑" 노래 / 129
4. 밀림속의 오락회 / 132
5. 불굴의 아동유희 / 137
6. 유격대행진곡 “아리랑” 부르며 / 147
제4장 민간, 민요수집과 아리랑
1. 중국 "조선족"과 "아리랑" / 153
2. 한민족의 민요"아리랑"의 전승과 수집 / 157
3. 해방 후 중국에서 창작된 "아리랑" / 161
4. 라디오방송국과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아리랑" / 163
5. 전설과 문학창작이 된 "아리랑" / 165
6. 출판문화와 문화지로 된 "아리랑" / 166
7. 조선족 민요수집에서 수록된 "아리랑" / 167
8. 조선민족의 멜로디 "아리랑" / 171
제5장 전통 민요 "아리랑"과 "창작 아리랑"
1. 중국에서 채보 된 전통민요 "아리랑" 악보 / 179
2. 중국 동북지방 해방 전?후의 아리랑 / 255
제6장 중국 동북에서 태어난 창작 아리랑
1.『장백의 새 아리랑』 창작 아리랑 / 289
2.『연변 아리랑』 창작 아리랑 / 292
제7장 연변 조선족 자치주 기념 "아리랑"
1.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10돐 경축대회 / 331
2. 연변 조선족 자치주 40주년 기념 / 333
3. 연변 조선족 자치주 50주년 기념 / 335
4. 연변 조선족 자치주 성립 60주년 기념 / 345
5. 연변 라디오 텔레비전의 가요 700수중에서 "아리랑"
아리랑 내 사랑 방송, 노래 책(연변 라지오텔레비전
방송국 방영) / 371
[출판사 서평]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에게 "아리랑"은 타 민요보다 민족의 상징성을 느끼며, "중국 속에서 살아가지만 한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중국 사람입니다." 라는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리랑"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아리랑은 중국에서 먼저 국가문화재로 등록하였고 이후 한국에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2014년에는 북한에서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 북한, 한국이 각각 자국의 문화재로 등재시키는 이 현실에서 과연 아리랑은 누구의 문화로 보아야 할까?
중국 조선족들의 아리랑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에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에 자신들의 생존과 발전의 길에서 중국내 소수민족과 이주민족 사이에서 좀 다른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삶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 동북지역의 개간 산업과 일제 강점기의 치욕적인 삶과 항쟁의 생활을 함께 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한민족의 뿌리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항일가요, 구전민요, 신 아리랑, 창작아리랑에 대한 노래뿐만 아니라 하나의 공연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족들의 살아온 시대적 표징이요 정신적 좌표로서 조선족 정서를 표현하였는바 조선족 음악보물의 진품 일뿐만 아니라 조선족들에게는 한 떨기 아름다운 진달래가 되기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중국은 아리랑뿐 아니라 여러 조선족 문화재를 세계급, 국가급, 성급, 주급, 시급 등으로 문화재로 전산작업 및 기록을 하고 있다. - (중략) -
이렇게 기록으로 담지 않았으면 현재에는 사라질 뻔한 자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50주년 때는 전체적인 무용을 담당했던 김정훈 선생님이 촬영 이후로 중풍으로 쓰러져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할 위기에 닥친 적이 있으며, 가야금 산조를 북한에서 배워 후배들에게 전수를 하신 김진 선생님은 벌써 하늘나라로 가신지가 10여년이 되었고, 1982년 “장백의 새 아리랑”을 작곡하여 중국 조선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신 안계린 선생님도 2014년(지난) 7월에 돌아가셨다.
이것을 지켜보던 나로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내용을 하루 빨리 책(자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절로 들게 되었다. 많은 문화속의 전통을 이어 오시는 분들이 한분, 한분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하루 빨리 영상 작업과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강릉 단오...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에게 "아리랑"은 타 민요보다 민족의 상징성을 느끼며, "중국 속에서 살아가지만 한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중국 사람입니다." 라는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리랑"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아리랑은 중국에서 먼저 국가문화재로 등록하였고 이후 한국에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2014년에는 북한에서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 북한, 한국이 각각 자국의 문화재로 등재시키는 이 현실에서 과연 아리랑은 누구의 문화로 보아야 할까?
중국 조선족들의 아리랑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에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에 자신들의 생존과 발전의 길에서 중국내 소수민족과 이주민족 사이에서 좀 다른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삶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 동북지역의 개간 산업과 일제 강점기의 치욕적인 삶과 항쟁의 생활을 함께 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한민족의 뿌리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항일가요, 구전민요, 신 아리랑, 창작아리랑에 대한 노래뿐만 아니라 하나의 공연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족들의 살아온 시대적 표징이요 정신적 좌표로서 조선족 정서를 표현하였는바 조선족 음악보물의 진품 일뿐만 아니라 조선족들에게는 한 떨기 아름다운 진달래가 되기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중국은 아리랑뿐 아니라 여러 조선족 문화재를 세계급, 국가급, 성급, 주급, 시급 등으로 문화재로 전산작업 및 기록을 하고 있다. - (중략) -
이렇게 기록으로 담지 않았으면 현재에는 사라질 뻔한 자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50주년 때는 전체적인 무용을 담당했던 김정훈 선생님이 촬영 이후로 중풍으로 쓰러져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할 위기에 닥친 적이 있으며, 가야금 산조를 북한에서 배워 후배들에게 전수를 하신 김진 선생님은 벌써 하늘나라로 가신지가 10여년이 되었고, 1982년 “장백의 새 아리랑”을 작곡하여 중국 조선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신 안계린 선생님도 2014년(지난) 7월에 돌아가셨다.
이것을 지켜보던 나로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내용을 하루 빨리 책(자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절로 들게 되었다. 많은 문화속의 전통을 이어 오시는 분들이 한분, 한분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하루 빨리 영상 작업과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강릉 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중국조선족은 "농악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면서 양국 간의 소리 없는 문화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리랑"조차 한국에서는 우리의 “아리랑”이라고 하고, 중국 조선족들은 같은 한민족으로 조선족들의 “아리랑”이 조선족의 자랑이라고 힘을 모아 문화재로 등록을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문화 전쟁이요, 국제적인 문화재로 선점을 하기 위한 전초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리랑"이 한국, 북한, 중국 등 한민족의 다국적 문화재로 등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의 아리랑은 220만 조선족들이 불러지는 것이고, 한민족의 뿌리인 동시에 고난과 애환, 슬픔, 환희의 아리랑인 것이다.
2002년 조선족 자치주 50주년의 행사 때와 2012년 조선족 자치주 60주년 행사와는 과거의 조선족과 현대, 미래의 조선족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주 1세대의 "아리랑"과 이주 이전의 "아리랑"은 현재의 "창작 아리랑"에서 한민족의 동질성과 민족성이 나타난다. 아리랑은 조선족의 단순한 민요가락이 아니라 한민족의 고향의 노래이고 핏줄에 얽힌 한 맺힌 노래로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는 노래인 것이다. - (중략) -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노래, 한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 한민족의 문화 중심의 아이콘이자 한민족의 정서인 아리랑! 한 사람이 아닌 한민족의 한마음으로 "중국 조선족의 아리랑" 글을 봐주시면 하는 마음입니다.